ARTICLES Artur Schnabel
2007-11-27 18:09:45
허원숙 조회수 1443

2000년 6월 3일 (토)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Artur Schnabel (아르투르 슈나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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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 너는 절대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너는 음악가이기 때문이야”
이 말은 세계적인 피아노 교육자인 레쉐티츠키가 그의 제자 아르투르 슈나벨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1882년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지방의 리프니크(Lipnik)에서 태어난 아르투르 슈나벨은 여섯 살 때 파데레프스키를 비롯한 많은 피아노의 거장을 배출한 빈의 레쉐티츠키의 문하생으로 들어갑니다. 9년간의 엄격한 가르침 끝에 유럽 악단에 등장한 슈나벨은 베토벤과 브람스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를 개척하게 되었지요.


“음악가를 통해서 음악을 보지 말고 음악을 통해서 음악가를 보아야 한단다. 그리고 음악활동이 손가락을 통해서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나는 연주를 위한 대부분의 일을 길을 걸으며 하거든.”
슈나벨이 그의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이 말처럼 그 자신은 무대 위에서 절대 과장하거나 쇼적인 요소를 보이지 않았고 앙콜 연주도 하지 않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에는 독특한 면이 있어서 청중들은 그의 열성적인 추종자와 신랄한 비평자의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1925년 그가 43세 되던 해부터 그는 베를린의 국립 음악고등학교의 교수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합니다. 여기서 클리포드 커즌과 클로드 프랭크를 키워내지요. 연주에도 주력했는데, 칼 플레쉬와 바이올린 소나타의 정기 연주회를 개최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지요.
그는 선생으로서 박력있고 엄격하였으며 때로는 무자비하고 독단적이기까지 했습니다. 학생들에겐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공부해야 하고 어려움을 겪어야 풍성한 결과를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선생은 문을 열어줄 뿐, 그 안으로 통과하는 것은 학생의 몫이라는 것을 강조했구요.


베토벤의 해석에 탁월한 그는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과 디아벨리 변주곡의 해석을 담은 이른바 슈나벨-에디션을 출판하였습니다. 이 악보는 폰 뷜로의 주석판 이래로 가장 권위있는 베토벤 해석의 전설적인 주석판이 되었지요.


슈나벨을 존경하였던 글렌 굴드는 말합니다.
“슈나벨의 연주엔 독특한 점이 많았고 그것은 정말 매혹적이었지요. 1940년대에 활약했던 그는 연주하는 악기와는 관계없이 음악 그 자체를 직접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실제 연주에서 음표를 빠뜨리고 연주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건 악보의 디테일보다 그 음악의 뒤에 있는 구조적 개념에 더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1927년 베토벤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일곱 번에 걸쳐 베토벤 전곡 연주회를 가졌고, 역사상 최초로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 레코딩을 한 아르투르 슈나벨은 1951년 69세의 나이로 스위스에서 그의 생을 마감합니다.


아르투르 슈나벨의 베토벤 연주를 감상하시겠습니다.
베토벤의 바가텔 a 단조, 일명 “엘리제를 위하여"입니다. (연주시간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