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Ignace Jan Paderewski
2007-11-27 18:08:45
허원숙 조회수 2011

2000년 6월 1일 (목)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Ignace Jan Paderewski (이그나츠 얀 파데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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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화가 뿐 아니라 건축가, 엔지니어, 조각가, 과학자이었으며, 비행기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관심과 전문성을 두루 갖추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요. 또한 조각가로 알려진 미켈란젤로도 조각가인 동시에 화가이며 건축가였지요.
대단하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같은 예술 분야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피아니스트가 정치가, 그것도 한 나라의 수상이며 대통령이었다면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1860년 11월 18일 폴랜드의 Kurylowka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는 그의 나이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Leschetizky(레쉐티츠키)선생님을 만나게 되지요.Leschetizky(레쉐티츠키)선생님은 당대 최고의 피아노 교육가였는데, 파데레프스키를 보고는,
“너무 늦었네. 피아노치는 테크닉도 없고, 재능도 아주 조금은 있네만, 손가락이 전혀 훈련이 되어있지 않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구만”하고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지요.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레쉐티츠키 선생님의 문하에 간신히 들어간 파데레프스키는 피나는 연습을 합니다. 거의 노예처럼 연습했다는 기록을 보면 얼마나 혹독한 연습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27세에 파리에서의 최초의 연주회를 개최하고 압도적인 대성공을 거둔 파데레프스키를 가리켜 그의 선생이었던 레쉐티츠키는 말합니다.
“파데레프스키는 천재입니다. 게다가 피아노도 칠 줄 알지요”라고 말입니다.
사실, 레쉐티츠키는 그의 문하생이 되겠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않겠다며 혹평을 하였답니다. 그 모든 시련을 견뎌낸 사람만을 그의 문하생으로 받아들였다는군요.

 

음악가로서의 탁월한 실력과 그의 매력적인 외모, 특히 불그스레한 금발의 긴 머리카락과 쇼맨쉽을 지닌 파데레프스키는 전 세계의 인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쇼팽, 슈만, 리스트, 베토벤의 작품 해석에 탁월한 능력을 나타냈고, 특히 조국인 폴랜드의 작곡가 쇼팽의 연주자로서는 비할 바 없는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였습니다. 그의 쇼팽 해석은 <파데레프스키 에디션>이라고 불리는 쇼팽의 악보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지요.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하여 분주히 활동합니다. 그 결과, 폴란드의 수상이 되었지요. 음악계를 떠나 정치에 전념한 파데레프스키는 그후 정치상의 이유로 조국을 떠나 다시 피아니스트로서 유럽과 미국의 무대에 서게 됩니다.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에 침입하자 폴란드 망명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된 파데레프스키는 1940년 미국으로 갔지만 애석하게도 이듬해인 1941년 급성 폐렴으로 81세의 생애를 마칩니다.

 

이그나츠 얀 파데레프스키의 메뉴엣 op.14-1을 그의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 1937년도 녹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