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07-11-27 14:13:29
허원숙 조회수 1539

2000년 5월 2일 (화)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M.Ravel: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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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섬진강 강가에서 어느 시인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서정시를 쓰시는 분이었는데요, 시에 대한 학구적인 강의가 될 지도 모른다는 저의 생각과는 달리, 그 분의 강의는 아주 소탈하게 살아온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도 하고, 또한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기도 한, 가슴 저미는 소중한 강의였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어린 여학생이 그분께 싸인을 부탁하더군요.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저분은 시인이니까 마음속에 담아 두고 계신 좋은 글들이 많을 거야. 아마 싸인도 정말 좋은 시의 한 구절을 써 주실걸”하고 내심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뭘 써줄까?”하고 짓궂게 그 학생에게 물으시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섬진강 기슭 저편을 바라보다가 “앞산에 뻐꾸기, 뒷산에 종달새”하고 쓰시는 겁니다.
“시인도 이렇게 그냥 재미삼아 글을 남기기도 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인간적인 그의 삶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작곡가가 곡을 쓰고 제목을 붙일 때에는 정말 그 작품에 맞는 제목을 고르느라고 마음 고생을 많이 할 것 같지요?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곡의 제목을 들으면 이 곡에는 큰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왕실에서 특별한 부탁을 받아 작곡된 곡이로구나” 하고 생각이 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라벨은 이 곡의 제목 중 <죽은 왕녀>에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특정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쓴 곡도 아니었구요.
그저 프랑스어로 된 이 제목 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의 발음이 주는 묘한 매력에 이끌려 붙였다고 하지요.
파반느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작품은 16세기 스페인 궁정의 춤곡의 장중한 형식미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_____의 연주로 감상하겠습니다.